왕실유물 보존처리 이야기
‘활옷’의 조사와 기록
보존처리에 앞서, 유물의 상태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것은 중요한 과정입니다. 유물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조사하고 기록해 두어야 올바른 처리법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기록은 향후 다시 보존처리하거나 유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때 중요한 자료로 사용됩니다. 이번 보존처리 이야기에서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인 ‘활옷(창덕 23440)’을 통해 복식유물의 처리 전 조사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활옷은 본래 조선시대의 공주 및 대군의 부인이 혼례시에 입던 옷입니다(그림 1). 이러한 의복이 혼례 때는 신분이나 품계에 관계없이 최고의 옷을 입을 수 있게 허락되었는데 이것을 ‘섭성(攝盛)’이라고 합니다. ‘섭성’ 덕분에 혼례복을 전문적으로 빌려주는 ‘세물전(貰物廛)’이 등장하였고, 여러 명이 빌려 입기도 해서 활옷은 수리한 흔적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활옷은 1981년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된 『朝鮮時代 宮中服飾』에 소개되었습니다(그림 2). 이 유물은 오염과 손상, 사용 흔적이 있으며 색동과 자수 등 장식요소가 많아 상세한 기록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현미경 촬영, 측색, 적외선 촬영 등의 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 사진 촬영
처리 전 유물의 상태를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 전체 사진(그림3, 4)뿐 아니라 처리가 필요한 오염 및 손상(그림5, 6)부분들을 사진으로 상세히 남겨야 합니다. 이 때 주의할 점은 색상카드를 함께 기록하여 이후 조사자들에게도 색상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유물 실측
복식류 유물은 일반적인 기초조사보다 몇 가지 치수를 추가로 측정합니다. 전통복식은 특별한 치수 측정법이 있어, 복식의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화장(목 중심~소매 끝), 총 길이(목 중심~가장 길이가 긴 곳), 수구(소매입구 너비), 고대(뒷목너비) 등을 그림 7과 같은 기록표에 기입합니다. 활옷의 경우에는 색동, 한삼, 자수뿐 아니라 보수로 인해 부분적으로 덧댄 부분이 있어 측정 부위가 많기에, 활옷의 각 조각마다 선을 그려 구획을 지은 후, 치수를 기입하였습니다.
또한, 각 부위마다 옷감이 달라 옷감의 종류에 따라 다른 색으로 표시하였습니다(그림 8).
• 손상 지도
다양한 부위에 오염이 분포되어 있고 손상도 심한 편이기에 도안을 그려 오염 및 손상의 상태, 크기, 정확한 위치 등을 기록하였습니다(그림 9). 그림 10은 좌측 소매의 자수에 해당하는 도안으로 자수실이 끊어진 곳, 바탕직물의 손상, 오염 등을 기록하였습니다. 손상 지도는 조사자의 의견으로 완성되는 기록으로, 객관적 기록인 사진을 보완하는 또 하나의 기초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현미경 촬영
휴대용 확대 현미경으로 30~200배로 배율을 달리하면서 유물을 촬영했습니다. 촬영의 목적은 첫째, 직물의 구조를 판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직물이 어떠한 구조로 짜여져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그와 어울리는 보강 직물을 선택할 수 있으며, 세척이 필요한 경우, 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오염 및 손상 부위의 상태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림 11은 오염부위를 현미경으로 촬영한 것으로, 오염의 종류를 확인하면 알맞은 처리법을 정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 측색
유물 조사시에 현재 색을 기록하기 위해 그림 12와 같이 분광측색계로 측정합니다. 측색계는 시료에서 반사된 빛을 각 파장마다 반사율을 측정하여, 이것을 일정한 체계로 수치화하여 표시합니다.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체계는 ‘L*a*b*표색계’로, 밝고 어두움의 정도와 색상을 인식, 종합하여 색을 나타냅니다.
보존처리에 있어서 측색의 목적은 조사뿐 아니라 세척 전 후의 색의 차이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먼지나 곰팡이, 어두운 색의 오염으로 표면이 덮인 경우에는 밀접한 부분의 측정값도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 적외선 촬영
적외선 촬영은 비파괴 분석법 중 하나로,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바탕층과 밑그림 부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적외선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길어 그을은 표면층이나 안료층을 통과하여 그 아래 존재하는 먹과 같은 탄소성분에 흡수되어, 검은색으로 나타나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바탕층과 밑그림 부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림 13).
활옷은 품이 넓고 길이가 긴 옷으로, 앞뒤로 빽빽이 수놓은 자수까지 더하여 옷의 무게가 상당합니다.
그래서, 형태를 지탱할 수 있게 폐지를 재활용하여 겉감과 안감 사이에 심지를 넣어 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활옷 조사 과정에서 안감이 손상된 부위를 통해 심지로 사용된 폐지를 살짝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심지가 어디까지 넓게 사용되었는지, 어떠한 폐지인지 조사하기에는 보이는 면적이 매우 좁았습니다. 한지에 먹으로 글씨가 쓰여진 폐지임을 확인하였으므로, 심지조사를 위하여 적외선 촬영을 적용했습니다.
그림 14는 자연광에서 일반 카메라로 촬영한 것으로 직물표면만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그림 15)을 보면, 가지런히 쓰여진 글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사결과를 모아본다면 숨겨진 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처리기록카드 작성
위의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보존처리 전 과정에서 얻은 유물 정보와 보존처리 전 과정에 대한 내용을 아래 그림 16과 같은 ‘유물처리기록카드’에 기록합니다. 이 기록에는 처리자, 처리기간, 유물의 규격 등을 기입하고, 처리 전 상태(유물의 재질, 손상 및 오염), 처리 과정(처리 순서, 방법, 보강 재료 등), 처리 후 상태를 상세히 기록합니다.
지금까지 활옷을 통해 복식류 유물의 처리 전 조사 과정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복식류 유물은 특수한 제작방식과 장식법, 실제 착용으로 인하여 생겨난 손상부위와 보수흔적 등 기록으로 남겨야 할 요소가 상당히 많습니다.
요소별로 다양한 조사방법을 적용하여야 최선의 보존처리 방법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바탕자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표준화된 조사 과정에서도, 조사 대상의 특수한 면을 살피고 그에 대한 별도의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정민 (유물과학과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