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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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례
유교를 통치 철학으로 한 조선은 ‘예禮’를 기초로 사회질서를 지키면서 백성과 즐겁게 화합하고자 하였다. 국왕은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 5가지로 예제를 정비해 왕실의 정치적 권위와 정통성을 확립하였다. 더불어 일생 동안 단계에 맞는 예를 행하고 효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백성들의 모범이 되었다. 의례를 치를 때는 절차마다 연주되는 음악부터 기물, 음식, 복식에 이르기까지 각종 형식을 제도에 맞춰 행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
왕실의례 - 대표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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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수교도 受敎圖
왕세자의 관례를 그림으로 표현한 13폭 화첩이다. 일반적으로 관례는 종묘에 관례 시행을 알리는 것을 시작으로 관과 의복을 세 번 바꿔 입는 의례[삼가三加], 술을 마시는 의례, 이제까지 부르던 이름을 대신해 자字를 지어 부르는 의례 등의 주요 행사를 거쳐 관례를 주관한 빈객賓客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왕, 왕대비를 뵙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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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7세기숙종 백자 태항아리와 태지석 肅宗白磁胎壺·胎誌石
숙종肅宗(재위 1674~1720)의 태를 담았던 백자 태항아리와 출생일, 태를 매장한 시기가 적혀 있는 태지석이다. 숙종은 1661년 8월에 태어나 같은 해 12월에 태를 묻었다. 1684년(숙종 10) 기존의 태실胎室에 석물을 더하는 가봉加封 절차를 거쳐 왕의 태실임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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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9세기 말~20세기 초백자도 병풍 百子圖屛
화려한 궁궐 정원에서 여러 명의 아이들이 다양한 놀이를 하는 장면을 그린 병풍으로 자손의 번성과 아이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왕실 혼례 때 왕비나 세자빈으로 간택된 여성이 임시로 머물던 별궁別宮에 백자도 병풍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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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황룡기 黃龍旗
조선시대 국왕의 의장에 사용되던 오방기五方旗 중 하나로, 황색의 용을 그려 중앙을 상징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행렬에서 중앙 가장 앞에, 조선 후기에는 둑纛과 교룡기交龍旗 다음에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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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연 輦
조선시대 대비, 왕, 왕비, 왕세자, 왕세자빈이 행차 때 탔던 정식 가마이다. 지붕, 몸체, 가마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이 분리가 되게 만들어졌다. 주칠을 한 몸체에는 금니金泥로 용龍, 백택白澤, 기린麒麟 등의 문양을 그려 장식했다. 네 면에 주렴을 드리우고 검은 휘장을 달아서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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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편경 編磬
‘ㄱ’자 모양의 경磬 16개를 두 단에 엮어 놓았다는 뜻에서 ‘편경’이라 부른다. 망치로 경의 아랫부분을 쳐서 소리 내며, 경의 크기는 모두 같고 두께로 음의 높낮이를 조절한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행한 각종 의례에 두루 사용되었다.
왕실의례 - 전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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