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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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궁궐
조선 왕조는 고려의 구세력 제거와 나라의 번영을 도모하기 위하여 풍수지리 사상에 따라 수도를 옮기고 새로운 터에 궁궐을 건립하였다. 북쪽 백악산을 주산主山으로 목멱산(남산, 남쪽) · 타락산(낙산, 동쪽) · 인왕산(서쪽)으로 둘러싸인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백악산을 뒤로하여 법궁法宮인 경복궁景福宮을 세웠으며, 좌우로는 종묘와 사직을 배치하였다.
궁궐은 중심에 국가 행사를 거행하고 국정을 논의하는 정전과 편전을 두고, 그 주변에 조정 관료들이 집무하는 관청을 배치하였다. 뒤쪽으로는 왕과 왕비의 취침 공간인 침전, 동쪽에는 세자가 기거하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건축물은 목조 구조에 기와를 얹었으며, 실내의 바닥은 정전과 편전의 경우 전돌 또는 마루를 깔고 취침 공간의 경우에는 온돌 시설을 갖추었다. 건물 외부는 왕의 권위와 존엄을 드러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색상과 길상吉祥문양을 이용한 단청으로 장식하였다.
조선 건국 직후 1395년(태조 4)에 세워진 경복궁은 가장 중심인 정궁(또는 법궁)으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1868년(고종 5)에 재건되었다. 이외에 1405년(태종 5)에 창덕궁, 1484년(성종 15)에 창경궁, 1622년(광해군 14)에 경덕궁(지금의 경희궁), 1897년(고종 34)에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등이 있다.조선의 궁궐 - 대표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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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1907년 전후북궐도형 北闕圖形
경복궁의 전모를 1/200 축척의 방안 위에 그린 평면도이자 배치도이다. 10~11mm 간격의 붉은색 방안 위에 검은 잉크로 건물의 명칭과 평면, 각 실의 용도를 표기했다. 북궐도형은 일제에 의해 대부분의 건물이 철거되기 직전의 경복궁 모습이 기록되어 있어 경복궁 복원의 주요 근거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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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9~20세기궁궐지 宮闕志
조선시대의 궁궐에 관한 대표적인 기록이다. 숙종대의 원본을 헌종대에 증보한 것과 순종대의 편찬본이 전하고 있다. 각 전각별 위치와 그곳에서 펼쳐진 중요한 정치·문화적 사건들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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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867년‘수’자 새긴 육각형 은판 ‘水’字銘六角形銀板
경복궁 근정전 중수공사 때 상량문과 용 그림을 그린 부적 등과 함께 발견되었다. 각 모서리마다 육각형을 서로 붙이면 세 개의 ‘수水’자가 모여 넓은 물의 모양을 나타내는 ‘묘淼'자가 되는데, 화재가 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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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792년정조와 신하들의 즉흥시 모음 內苑賞花壬子賡載軸
창덕궁 후원 옥류천 일대에서 정조와 규장각 관원들이 꽃 구경과 낚시를 즐기면서 쓴 친필 시를 모아 연결한 시축詩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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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1905년용무늬 천장 장식 雙龍刻寶蓋
궁궐 정전이나 편전 등 왕이 앉는 자리의 천장에 설치되었던 장엄물이다. 왕의 존엄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인 용이나 봉황으로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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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9세기경회루 연못 출토 청동용 靑銅龍
1997년 경복궁 경회루 연못의 준설 작업 도중에 출토되었다. 『경회루전도』에 따르면 경복궁 중건 당시에 화재 방지를 위하여 청동으로 만든 용 두 마리를 연못에 넣었다고 한다.
조선의 궁궐- 전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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