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유물 보존처리 이야기
사람과 곤충의 보이지 않는 전쟁터 “박물관”
바퀴벌레, 딱정벌레, 다듬이벌레, 개미, 모기, 파리, 나방, 벌, 좀. 한번쯤은 듣거나 보았을 낯익은 곤충들입니다. 곤충은 전 세계적으로 약 95만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체 생물종 중 4/5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약 12,000종이 기록되어 있을 만큼 다양한 존재들이 우리와 공존하고 있는데, 하늘을 날면서 멀리 이동하게 되었고, 산란개체가 많은 이유 등으로 현재와 같이 지구에서 번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곤충의 생존 활동은 인간 입장에서는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먹이를 씹거나 갉아먹고, 배설하는 자연스러운 행동과 결과들이 유물에서 확인된다면 심각한 손상을 만들기 때문에 유물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박물관에서는 곤충과 전쟁을 해야 합니다.
유물에 피해를 주거나 불쾌감을 주는 대표적인 곤충들의 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좀벌레〕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좋아하기 때문에 전분, 아교처럼 종이에 바른 풀이나 면·대마·저마 같은 식물성 섬유를 좋아합니다.
〔다듬이벌레〕 곰팡이류를 주된 영양원으로 하며, 습하고 어두운 환경을 좋아합니다. 주로 자연에서 살아가지만 실내에 곰팡이가 핀 장소에서도 관찰되며, 박물관 등에서도 자주 관찰되는 가해 해충이지만 피해는 경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퀴벌레〕 잡식성으로 환경변화에 잘 적응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주변 환경을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고, 바퀴벌레의 먹이가 되는 요소들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미류〕 계급사회를 이루며 집단으로 생활하는데, 특히 흰개미는 유물에 심각한 손상을 입힙니다. 흰개미는 잡식성으로 목재, 가죽, 섬유, 플라스틱 등 다양한 재질에 손상을 일으킵니다.
〔딱정벌레류〕 모든 생물군 중에서 가장 종류가 많은 그룹이며, 이 중 수렁이과에 해당하는 곤충들이 문화유산 가해 곤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물성 재질에 주로 해를 끼치는데, 양모나 견 등의 섬유로 이루어진 의류, 카펫, 가죽, 고서적 표지 등이 피해를 입기 쉬우며, 섬유를 잘라내고 충공이 생기는 등의 손상이 발생합니다. 수렁이과 외에도 개나무좀, 넓적나무좀, 빗살수염벌레, 표본벌레, 바구미 등 다양한 딱정벌레류에 속하는 곤충들이 유물에 손상을 일으킵니다.
박물관에서 관찰되는 곤충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곤충은 따뜻하고, 습하면서, 어둡고, 먹이가 있는 환경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박물관의 전시실이나 수장고는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공간으로 곤충의 기준으로 보면 춥고, 건조한 환경이며, 먹잇감인 유물들도 약품 등에 의해 보존관리가 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곤충이 살아가기에는 척박한 환경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환경 속에서 관찰되는 곤충은 이미 박물관의 환경에 적응이 된 상태일 수 있으며, 경쟁할 상대가 없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개체로 증가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박물관에서는 곤충을 차단해야 하며,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곤충이나 곰팡이에 의한 피해를 막기 위해 의류나 서적을 바람에 쐬거나거풍擧風 햇볕에 말리는 작업포쇄曝灑, 또는 운향蕓香, 사향麝香, 장뇌樟腦 등을 넣기도 했습니다. 서양에서는 19세기 말부터 독성이 강한 약품을 이용해서 곤충 피해를 막는 방법이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강한 독성에 의해 오히려 박물관 관람객이나 직원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가스를 이용한 소독으로 곤충을 없애는 방법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가스가 오존층을 파괴하는 원인으로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상황이며, 이에 따라 새로운 대체 약품을 이용한 소독방법이 연구 중에 있습니다. 최근에는 곤충의 유입경로나 발생 원인을 파악하여 사전에 예방함으로써 약품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들이 활용되고 있습니다(I.P.M; Integrated Pest Management).
사람이나 곤충 모두 다양한 활동을 통해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나름의 흔적을 남기면서 살아갑니다. 모두가 존재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 할 뿐이며, 다만 그 노력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어느 하나가 이겨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곤충 박멸보다는 유물 피해를 미리 방지하면서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그것이 유물을 관리하는 박물관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심명보(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