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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

  • 전시기간

    2019/03/01~2019/03/31

  • 전시장소

    전시실(1층)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



전시를 열며

 1919년 1월 21일,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되어 덕수궁에서 지내던 고종 황제(재위 1863-1907년)가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종의 국장國葬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주도하여 진행하였기에 전통적인 조선 국왕의 국장 절차에 비하여 매우 축소되고 변형되었다. 승하 후 불과 40여 일만에 덕수궁에서 발인하였고, 이를 서러워하는 많은 사람들의 통곡 속에서 조선의 제26대 왕이며 대한제국의 1대 황제였던 고종은 명성황후(1851-1895년)와 함께 남양주 홍릉洪陵에서 잠들었다.

고종의 죽음은 우리나라 항일독립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항쟁이라고 할 수 있는 3·1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대한제국 황실이 이왕가李王家로 격하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나라의 상징이었던 고종 황제가 독살되었다는 소문은 나라를 잃고 억눌려 왔던 사람들의 울분을 폭발시킨 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의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 전시에서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역사적인 민중 항쟁의 배경이 되었던 고종 황제의 국장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고종 황제, 갑자기 승하하다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 21일 새벽에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하였다. 사인死因은 뇌일혈로 알려졌으나 고종의 갑작스런 죽음은 곧 일제에 의한 독살설로 이어졌다.

고종 황제가 조선 독립 운동에 대한 비판적인 성명을 발표하라는 일본 정부의 강제적 요청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또는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을 호소하는 성명문을 보내려고 했기 때문에 일본인 혹은 친일파에게 독살 당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간 것이다.

고종 황제의 독살설은 3·1운동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당시 민중들에게 조선왕실과 이를 잇는 대한제국이 여전히 의미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고종 황제, 갑자기 승하하다



고종 황제의 국장, 조선총독부가 주도하다

조선왕조에서 왕과 왕비의 장례 절차인 국장國葬은 임시기구인 도감都監의 주도 아래 70단계에 달하는 절차를 대략 3년에 걸쳐 장중하게 진행하였다.

그러나 고종 황제의 장례는 조선총독부가 임시로 설치한 장의괘葬儀掛가 주도하였고 절차가 축소, 변형되었다. 또한 일본 친왕親王의 국장을 기본으로 하고 조선의 관습을 더한다는 원칙으로 진행되었기에 일본 신도神道식 의례가 적용되었다. 이러한 변형과 왜곡은 일본의 식민 통치 하의 현실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다.

고종 황제의 국장은 국내외에 큰 관심사가 되었다. 국장 기간 내내 관련 기사가 끊임없이 보도되었고 이는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고종 황제의 국장, 조선총독부가 주도하다

고종 황제의 국장, 조선총독부가 주도하다



고종 황제, 홍릉洪陵에 잠들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오른 고종은 황실의 위상에 맞는 능을 조성하기 위해 중국 명대 황제릉을 참조하여 자신과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능을 마련하였다. 고종은 일제강점기에 승하하여 일본식 장례 절차에 따라 국장을 치러야만 했으나, 홍릉 건설은 고종이 생전에 주도한 것이며 부강한 나라를 이룩하고자 했던 소망이 담겨 있다

고종 황제, 홍릉洪陵에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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