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전시
특별전시
갓 쓰고 米國에 公使 갓든 이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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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2022/10/14~20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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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소
2층 기획전시실 Ⅰ
전시 개요
Exhibition Overview
올해는 한・미 수교 1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때마침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과 『미국서간美國書簡』이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습니다. 이 두 점에는 최초로 미국 주재 외교 사절로 파견된 박정양朴定陽(1841~1905년) 공사와 그 일행의 외교 활동에 관한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두 점의 등록문화재와 관련 자료 전시를 통해서 상투에 갓 쓰고 미국 땅을 밟았던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prologue
새로운 세계와 마주하다
Encountering a World of Light
미국에 대한 조선의 인식은 개항기의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변화했다.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 이후 미국은 조선을 강제로 개항하려 한 무지한 오랑캐, 즉 양이洋夷였다. 1882년 조선은 복잡한 국제 관계 속에서 다각적 외교 관계의 필요성을 느끼고 서양 국가와는 최초로 미국과 조미수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조약 체결 이후 1883년 미국으로 파견된 보빙사報聘使는 미국의 발전된 도시와 기술을 경험했다. 보빙사 대표 민영익閔泳翊이 미국을 ‘광명 세계’라 칭할 만큼, 조선의 혼란한 정세 속에서 미국은 ‘오랑캐 나라’에서 ‘배워야 할 나라’로 탈바꿈했다.
chapter. 1
본격적인 외교 활동을 펼치다
Taking the First Steps towards Independent Diplomacy
조선은 자주국가임을 알리기 위해 1887년, 박정양을 초대初代 주미전권공사로 임명하고 미국에 파견하려 했다. 그러나 청이 파견을 반대하며 간섭을 해오자 청이 요구한 영약삼단另約三端 준수를 조건으로 미국에 공사 일행을 파견할 수 있었다.
박정양 공사 일행은 언어와 문자가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고군분투했다. 공사 일행은 청국 공사관을 통하지 않고, 고종의 국서를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해 조선이 자주국임을 알렸다. 또 미국에 상주하면서 주미조선공사관을 개설하고, 미국 실정을 살피며 대미외교의 기반을 마련했다.
chapter. 2
본격적인 외교 활동을 펼치다
Continuing the Legacy of Diplomacy
주미공사관원 일행은 미국의 각종 외교 행사에 참석하고 주요 기관을 살피면서 경험을 쌓았다. 이들의 경험은 근대 전환기 조선의 개화 정책 추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박정양의 후임인 제2대 대리공사 이하영은 1889년 2월 주미조선공사관을 워싱턴 D.C. 로건서클(Logan Circle)에 위치한 두 번째 공사관으로 옮겼다. 이 건물은 공사관원이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본격적인 외교 활동을 할 수 있는 근거지가 되었다. 박정양 공사 이후에도 공사관원은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당한 1905년까지 16년 동안 외교 활동을 펼쳤다.
Epilogue
미국 속의 한국, 주미조선(대한제국) 공사관
The Korean Legation in the U.S.: Korea in America
미국 워싱턴 D.C.에 개설됐던 주미조선(대한제국)공사관은 조미수호조약 체결에 따른 성과물이다. 현재 남아있는 주미조선(대한제국)공사관은 두 번째 주미공사관으로, 한·미 외교의 초창기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이후, 현지 교민 사회와 대한민국 정부 등 각계각층에서 이 공사관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2012년 10월, 문화재청이 공사관 건물을 매입해 다시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공사관 관리와 운영을 위탁받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고증 조사, 보수·복원 공사 등 사업을 추진한 끝에 2018년 5월에 공식적으로 개관했다.
워싱턴 D.C.에는 한·미 외교 활동의 초기 근거지인 주미대한제국공사관과 오늘날 외교의 장인 주미대한민국대사관이 공존한다. 과거와 현재의 외교공관은 한·미 외교역사를 보여주며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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