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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에 피어난 기록의 꽃, 실록과 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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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2022/09/19~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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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소
국회의원회관 2층 중앙홀(제2로비)
o 주최: 국립고궁박물관, 국회의원 배현진, 왕조실록‧의궤박물관
o 주관: 문화재청
o 후원: 대한불교조계종
역사의 여러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마침내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온 오대산사고본 실록과 의궤를 만나고, 그 역사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뜻깊은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01 조선왕조실록은 무엇인가요?
조선 왕실 역대 국왕의 행적을 날짜순에 따라 서술한 역사서이다. 국왕이 승하昇遐하면 실록 제작이 시작되며, 완성된 실록은 실록궤에 담아 내사고內史庫인 춘추관 사고와 각 지의 외사고外史庫에 보관한다. 실록은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이르는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정수이다.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02 조선왕조의궤가 무엇인가요?
조선 왕실의 혼례, 장례, 잔치, 국왕의 행차 등 중요 행사를 치르고 그 결과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보고서이다. 의궤는 어람건御覽件(왕의 열람용)과 분상건分上件(보관용)으로 격을 달리하여 편찬했다. 의궤의 안전한 보관을 위해 보통 5~9부를 제작하여 어람용은 규장각에 보관하고, 분상용은 업무 참고를 위한 필요 관청과 내·외사고에 나누어 보관하였다. 의궤는 조선왕조의 중요한 기록물로 보물로 지정되었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조선 왕실의 혼례, 장례, 잔치, 국왕의 행차 등 중요 행사를 치르고 그 결과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보고서이다. 의궤는 어람건御覽件(왕의 열람용)과 분상건分上件(보관용)으로 격을 달리하여 편찬했다. 의궤의 안전한 보관을 위해 보통 5~9부를 제작하여 어람용은 규장각에 보관하고, 분상용은 업무 참고를 위한 필요 관청과 내·외사고에 나누어 보관하였다. 의궤는 조선왕조의 중요한 기록물로 보물로 지정되었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03 실록과 의궤는 어떻게 관리하였나요?
조선은 일찍이 중앙과 지방에 있는 사고史庫(역사서 보관소)와 관련기관들에 실록과 의궤를 나누어 보관하는 기록 관리 체계를 갖추었으나, 임진왜란(1592~1598년)으로 전주사고를 제외한 나머지 사고가 모두 소실되었다. 전쟁 이후 1606년(선조39) 오대산을 포함해 진입이 어려운 산지를 중심으로 사고를 재설치하였다.
조선은 중앙과 지방 사고에 관리를 파견하여 엄격하게 관리했다. 보통 3년마다 담당 관리가 직접 책에 햇빛과 바람을 쏘여 습기와 벌레 피해를 예방하는 포쇄暴曬를 행했다. 또한 사고의 기록물 보관 상태보고서인 형지안形止案을 작성해 모든 내용을 문서로 남김으로써 관리와 보호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04 오대산사고본 실록과 의궤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오대산사고본이란 임진왜란(1592~1598년) 이후 새롭게 건립된 오대산사고에 보관하던 자료들이다. 전란 이후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본을 기준으로 실록을 다시 편찬하면서 그 교정쇄본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제본하여 오대산사고에 봉안하였다. 오대산사고본은 현존하는 조선왕조실록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교정쇄본으로, 실록의 제작 과정을 알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오대산사고본 의궤는 보관용인 분상건 의궤이다. 임금이 열람하는 어람건과 내용은 동일하나 표지, 종이, 안료의 재질, 장정 방법, 서체와 필사, 그림 수준 등 질에서 차이가 있다.
오대산사고본이란 임진왜란(1592~1598년) 이후 새롭게 건립된 오대산사고에 보관하던 자료들이다. 전란 이후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본을 기준으로 실록을 다시 편찬하면서 그 교정쇄본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제본하여 오대산사고에 봉안하였다. 오대산사고본은 현존하는 조선왕조실록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교정쇄본으로, 실록의 제작 과정을 알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오대산사고본 의궤는 보관용인 분상건 의궤이다. 임금이 열람하는 어람건과 내용은 동일하나 표지, 종이, 안료의 재질, 장정 방법, 서체와 필사, 그림 수준 등 질에서 차이가 있다.
05 현재 오대산사고본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요?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 오대산사고의 의궤는 1922년에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었다. 타국으로 흩어진 우리의 기록 유산을 되찾기 위한 정부와 민간의 지속적인 노력 끝에 2006년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반환에 이어 2011년 조선왕조의궤가 돌아옴으로써, 일본에 나간 오대산사고본 실록과 의궤가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오대산사고본 실록 75책, 의궤 82책이 현재 소장되어 국민에게 공개되고 있다. 2022년 국회에서는 “국립조선왕조실록 전시관 설립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고, 문화재청도 국회결의안이 실행될 수 있도록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평창) 설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박물관이 만들어지면 오대산사고본 실록과 의궤에 대한 연구와 활용이 더 활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 오대산사고의 의궤는 1922년에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었다. 타국으로 흩어진 우리의 기록 유산을 되찾기 위한 정부와 민간의 지속적인 노력 끝에 2006년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반환에 이어 2011년 조선왕조의궤가 돌아옴으로써, 일본에 나간 오대산사고본 실록과 의궤가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오대산사고본 실록 75책, 의궤 82책이 현재 소장되어 국민에게 공개되고 있다. 2022년 국회에서는 “국립조선왕조실록 전시관 설립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고, 문화재청도 국회결의안이 실행될 수 있도록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평창) 설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박물관이 만들어지면 오대산사고본 실록과 의궤에 대한 연구와 활용이 더 활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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