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추천 왕실 유물 소개
[2022년 11월] 옛날을 생각하며 글을 적은 현판, 억석년회천만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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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을 생각하며 글을 적은 현판, 억석년회천만 현판 憶昔年懷千萬 懸板
Hanging Board Inscribed with King Yeongjo's Reminiscence about a Time with His Grandson
영조 어제, 이재간 글씨, 조선朝鮮, 1774년(영조 50) ㅣ 나무ㅣ 세로: 34.0cm, 가로: 73.0cm
2F 조선의 국왕실
영조(英祖, 재위 1724~1776년)가 1774년 3월 21일 왕세손[훗날 정조(正祖, 재위 1776~1800년)]과 함께 궁궐 안 여러 곳을 돌아보고 지은 글을 새긴 현판이다. 81세였던 왕세손을 데리고 경봉각(敬奉閣, 중국 명나라 황제의 칙서를 보관하던 경희궁 건물)을 참배한 후, 홍문관(弘文館, 왕의 자문 기관), 춘방(春坊, 세자 교육 담당 기관으로 세자시강원이라고도 함), 승정원(承政院, 왕의 비서 기관) 세 곳을 돌아보며 한 일이 옛날에 행해졌던 일과 일치하는 것을 뜻밖이라 생각하며 다음날 글을 남겼다.
영조는 홍문관에서 『시경詩經』의 풍천장風泉章을 강론하고 춘방에서는 왕세손에게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읽게 했는데, 이는 문종(文宗, 재위 1450∼1452년)이 당시의 집현전에 나아가 밤낮으로 학문에 몰두하던 것을 본받고자 한 것이다. 영조는 자신이 81살에 왕세손과 함께 행한 세 가지 일, 즉 81살 할아버지와 손자가 경봉각을 참배한 일, 승정원과 춘방을 찾아간 일, 홍문관과 춘방에 가서 강독한 일이 뜻밖이라며 그 감회를 적었다. 그리고 옛날 중국 고대 요堯 임금이 강구(康衢, 태평성대의 세상)를 노닌 것처럼 영조가 올해 궁궐을 노닐고 있는 일, 한나라 광무제(光武帝, 재위 25~57년)가 1년 동안 남양 지역에 부역을 면해준 것과 같이 영조가 삼원(三院)의 아전과 하인에게 1년간 부역을 면제해준 일, 이 일이 모두 지난날에 행해졌던 일과 우연히 일치해 그 개요를 기록해 후손에게 보이자고 했다.
이에 영조는 이 글을 현판으로 만들어 후대에 전하도록 했는데, 승정원 호방 승지(戶房承旨) 이재간李在簡(1733~1789년)에게 글씨를 써 삼원, 즉 세 관서官署에 걸게 명했다. 또한 1건은 첩(帖)으로 만들어 가져오게 했다.
뒷면에 ‘츈방 셔남’으로 추정되는 묵서가 적혀있는 모습
현판 뒷면에는 ‘츈방 셔남’으로 보이는 한글 묵서가 남아있어, 춘방 곧 세자시강원의 서남쪽에 걸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궁중 현판은 현판에 새겨진 의미를 널리 알리고 후대까지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궁궐 건축물의 안팎에 걸었음을 알 수 있다.
This hanging board bears a carved version of writing that King Yeongjo composed at the age of eighty-one after visiting several places within the palace together with his grandson (the future King Jeonjo) on the twenty-first day of the third lunar month of 1774. After paying respects to the spirit tablets of Chinese emperors enshrined in Gyeongbonggak Hall, King Yeongjo and his grandson visited the Hongmungwan (Office of Special Advisors), Chunbang (Crown Prince Tutorial Office), and Seungjeongwon (Royal Secretariat). Noting that the duties and polices he carried out as a Joseon king corresponded those of Chinese emperors from the past, he felt surprised by the similarities. King Yeongjo wrote about this and had it engraved on a hanging board so that sovereigns in later generations could keep it in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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