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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유물 보존처리 이야기

세월의 흐름과 닮은 색

왕실 유물 보존 처리 이야기


염색이란 다양한 원료에서 색소를 추출하여 직물이나 종이 등을 물들여 색을 내는 일을 말합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왕실의 복식이나 보자기, 시전지, 서책 등 오방색(적, 청, 황, 흑, 백)을 기본으로 염색하여 제작한 유물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화려했던 색들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래고 변색 되는데 이러한 유물의 보수에 사용되는 재료들 또한 지난 세월이 느껴지는 고색으로 표현되어야 이질감 없고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따라서 지류유물의 보존처리에 사용되는 염색지는 갈색계열을 띄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색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오리나무 열매나, 도토리열매 꼭지를 많이 사용합니다.



오리나무 열매


이들 재료를 사용한 염색법은 옛 문헌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오래된 산행목을 가늘게 잘라 물 3동이가 1동이가 될 때까지 끓인다. 오리나무의 껍질을 말린 후 가루로 만들어 물에 담근다. 다시 회 2, 3홉을 넣고 염색한다.’라는 기록에서 오리나무의 껍질을 사용한 염색방법을 알 수 있고, 중국의 고서인『거가필용(居家必用)』에서는 ‘비단이 10량일 경우 소목 4량을 곱게 부수고, 상수리 1량을 곱게 갈고, 백반 2량과 녹반이 소요되는데 자료와 염법은 소홍법과 같다.’라는 기록과 『산림경제(山林經濟)』의 ‘침향색(황갈색)은 상수리나무 껍질을 달인 물에 염색한다.’라는 내용에서 도토리를 사용한 염색법을 확인할 수 있어 예부터 이들 재료를 이용한 염색이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물과 어울리는 보수용 염색지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염색을 해서 다양한 색을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오리나무 열매를 사용한 염색을 한다면 첫 번째 염액은 열매 20g을 1,000ml의 증류수에 넣고 1시간을 끓여 만들고 두 번째 염액은 열매 40g을 1,000ml의 증류수에 넣고 1시간 끓여 만들며, 세 번째 염액은 60g의 열매를 1,000ml의 증류수에 넣고 1시간 끓여 만들어 냅니다. 이렇게 준비한 염액에 각각 한지를 담궈 염액이 스며들면 깨끗한 물에 헹구어 내고 말리는 과정을 동일하게 반복하면 되는데 이때 세 번째 염액을 사용해 물들인 한지가 가장 진한 색으로 염색되게 됩니다. 이후 한지에 색을 고착시키는 과정인 매염을 거치면 보수용 염색지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염액에 한지를 담궈 색이 스며들게 하거나 붓으로 직접 염액을 바르는 모습
염색한 한지


이렇게 염색한 한지는 얇은 띠로 잘라 종이 유물의 찢어진 부분을 연결해 주거나, 손상되어 없어진 부분을 메우는 작업에 사용됩니다. 


손상되어 없어진 부분을 메우는 작업에 사용



창덕 8052 「상보」의 보존처리


심미성, 안정성, 원형과의 차별성을 골고루 만족시킬 수 있는 보수 재료를 준비하기 위한 염색작업은 여러 번의 실험과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물론 전승되고 있는 소중한 유물들이 손상되지 않고, 세월의 흐름만을 담아가며 보전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훼손된 유물이라면 더 이상 문제가 커지지 않게 구조적으로 보완해 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보완 재료가 유물과 함께 역사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려면 많은 고민과 중요한 선택과정이 필요합니다.
원형과 현재의 보완된 부분이 어우러져, 유물은 또 다른 ‘생명주기’를 맞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1) 지주연, 지류문화재 보존처리에 사용되는 염색보수지의 매염제에 따른 열화특성 연구, 한서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13
2) 한국의 전통 염색방법의 화학기술-규합총서와 임원경제지에 기록된 방법들을 중심으로, 한국과학사학회지 제 10권, 1988



유지은 (유물과학과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