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유물 보존처리 이야기
서양식 고기 분쇄기 보존처리
조선의 개항 이후 많은 서양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생활을 했습니다. 이에 따라 서양식 문화가 자연스럽게 유입되었고, 실생활 특히 식생활에서도 서양식 생활방식과 기구들이 들어왔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개항기부터 일제시대까지 왕실의 서양식 연회에 사용되었던 다양한 주방기구, 제과형틀, 식기 등 3,000여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우리 박물관에서는 이들 식기에 대한 보존처리를 하고 있으며, 그 중 고기 분쇄기 보존처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육류를 잘게 다지는데 사용한 주방기구의 일종인 고기 분쇄기는 둥근 몸체와 손잡이로 이루어져 있고, 손잡이 끝부분만 나무이고 나머지는 모두 철로 만들어졌습니다. 세부적으로는 몸체, 원형으로 돌리는 L자 손잡이, 고기를 다지는 분쇄날, 다진 고기를 얇게 뽑아내는 분쇄판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사진1,2) 몸체 전면에 제조국(MADE IN SWEDEN)과 제조번호(32)가, 후면에는 제조회사명(BOLINDER'S)이 양각되어 있어 스웨덴의 볼린더 회사에서 만들어졌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고기 분쇄기를 육안으로 살펴보면 이물질 및 부식화합물로 표면이 오염되어 있고, 바탕금속 위에 부분적으로 흑색층이 관찰됩니다. 고기분쇄기 바탕금속과 흑색층의 성분을 알아보기 위해서 물질의 성분을 밝혀주는 X-선 형광분석기(XRF, X-ray Fluorescence Spectroscopy)을 이용해 정밀분석을 하였습니다.(사진3,4) 성분 분석 결과, 고기분쇄기 바탕금속은 주성분으로 철(Fe)이 검출되었으며, 흑색층의 주성분은 주석(Sn)이 검출되었습니다.(표1 참조) 이를 통해 철로 제작한 고기분쇄기를 주석으로 도금하여 제작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철제는 부식이 빨리 진행되기 때문에 주석으로 도금하면 철이 산화되어 녹스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고기분쇄기 표면과 내부에 이물질 및 부식화합물이 덮여 있어서, 이를 오랫동안 방치하면 손상이 진행되어 문양 및 형태 변화가 발생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기분쇄기 내·외부 이물질 제거를 위해 분해해서 각각의 부품 모두를 보존 처리하였습니다. 분해 방법은 원형 자물쇠를 돌려 해체 후 분쇄판과 분쇄날을 꺼내는 방식입니다. 이물질 제거는 1차적으로 부드러운 붓으로 털어내고, 몸체 안쪽에는 진공흡입기를 사용하여 제거를 하였습니다. 2차적으로는 면봉과 면솜을 알코올(Alcohol)에 묻혀서 세척을 하였습니다.(사진5,6)
이물질 제거 완료 후에는 대기 중의 산소 및 수분에 의해서 생기는 부식을 억제하고, 주석 도금층의 박리 및 박락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강화처리를 하였습니다. 아크릴계 수지인 Paraloid B-72에 용제(Acetone)를 2% 용액으로 제조하여 붓으로 균일하게 발랐습니다.(사진7,8)
고기분쇄기의 이물질 제거 및 강화처리를 통해 부식을 방지하고 박락되는 도금층을 보호하였습니다. 보존처리 과정에서 사용한 약품과 처리방법 등은 처리 전·후 사진과 함께 보존처리 대장에 상세히 기록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향후 유물을 또다시 보존처리 할 경우에 자료를 제공하고, 유사한 유물의 보존처리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안성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