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유물 보존처리 이야기
책을 꾸미는 아름다운 비단, 장황(粧䌙)
장황(粧䌙)은 회화나 전적류 등을 감싸는 장식으로, 글과 그림을 보호하고 위엄과 아름다움을 갖추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보통 장황에 사용된 직물을 ‘장황비단’이라고 부르는데, 비단(緋緞)은 명주실로 광택이 나게 짠 직물을 통틀은 말로 주로 쓰입니다. 세밀히 나누면 단(緞)은 ‘주자직(朱子織, 또는 수자직繻子織)’의 한 종류입니다.
직물은 세로방향 경사(經絲, 날실)와 가로방향 위사(緯絲, 씨실)를 서로 교차하게 엮어서 만들어지는데, 주자직은 경사와 위사의 교차간격을 넓게 짜서 실이 표면에 길게 뜨도록 제직한 직물입니다. 여러 가지 직물조직 중 늦게 발달된 것으로, 고려후기에 출현하여 조선시대에 들어 일반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무늬없는 비단 종류로 흔히 부르는 공단(貢緞)과 문양이 보이는 문단(紋緞)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장황에 쓰인 직물은 조직의 종류에 따라 표면의 촉감과 광택이 다르고, 사용하면서 낡아가는 모습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직물류의 보존처리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조직을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미경 조사는 직물표면을 육안으로 관찰한 것과 실제 조직이 다를 수 있음을 밝혀주고, 보존처리와 관리 시 어떠한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여기에서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전적류의 표지에 대한 디지털현미경(Scalar DG-3x) 조사 내용을 통해 장황직물의 여러 종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모든 사진은 순서대로 소장품, 문양확대, 조직 30배 확대와 100배 확대 사진임.)
현륭원기용정례(顯隆園器用定例)
○ 39×55.7㎝, 1789년 이후
○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에서 사용된 기물에 대한 책
『현륭원기용정례』의 표지는 구름과 여러 가지 보물문양[寶紋]이 새겨진 운보문단(雲寶紋緞)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구름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비를 움직이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경외롭고 높은 신분과 위엄을 상징하였습니다.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구름문양은 위사(가로방향 실), 문양이 없는 바탕은 경사(세로방향 실)로 덮여 있는데, 조직면에서는 구름부분 조직을 위주자직, 문양부분을 경주자직이라고 합니다. 문단은 주로 이렇게 구성되기 때문에, 앞뒤를 알 수 없을 때는 바탕이 보다 촘촘하고 매끈한 쪽을 앞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문단은 바탕과 문양 부분에 빛이 반사되는 정도가 달라 은은한 문양이 드러납니다.
집경전구기도(集慶殿舊基圖)
○ 22.5×32.9㎝, 1798년 이후
○ 태조의 어진을 모셨던 경주의 집경전(集慶殿) 옛터[舊基]에 대한 글과 그림을 묶은 책
『집경전구기도』의 표지에 쓰인 비단은 여러 가지 모양의 작은 꽃들이 넝쿨로 이어진 문양을 띠고 있습니다. 이 표지는『현륭원기용정례』표지와 유사한 조직이지만, 경사와 위사의 색을 다르게 하여 제직한 이색문단(異色紋緞)입니다. 현미경 확대조사를 통해 꽃문양부분을 덮고 있는 회색과 바탕부분을 덮고 있는 쑥색의 확연한 색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운보문단이 조직의 빛반사 차이 때문에 색이 달라보였다면, 이색문단은 실 자체의 색을 다르게 사용한 것입니다.
선원록(琁源錄) 권 36
○ 41.4×61.8㎝, 1681년
○ 왕의 친인척에 관한 인적 사항을 기록한 왕실 족보
『선원록』의 광택나게 매끄러운 청색 표지는 사방으로 연속되는 마름모형 꽃잎테두리와 그 안의 꽃문양이 밝게 드러나 있습니다. 이 표지도 ‘문단’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이것은 무늬가 없이 ‘평직(平織)’으로 짜여진 ‘주(紬)’입니다.
이 표지는 기교없이 짠 직물에 흥미로운 방식으로 문양을 만들었는데, 조각된 능화판(菱花板)으로 눌러 무늬가 드러나 보이게 하였습니다. 현미경 사진에서 꽃중심은 밝게, 그 주변 바탕은 어둡게 보입니다. 더 확대된 사진에서는 밝은 문양부분의 실의 입체감이 살아있고, 어두운 바탕부분은 납작하게 눌려졌음이 확인됩니다.
영조어필(英祖御筆)- 전하수서(殿下手書)
○ 26.4×49㎝, 영조 재위년간(1724~1776)
○ 영조가 친히 잔치에서 신하들에게 글과 술, 안주를 내린 글을 모아놓은 책
『영조어필』(『전하수서』)의 표지는 연속된 귀갑(龜甲) 무늬 안에 꽃을 넣고, 배경문양으로 마름모무늬[菱文]를 늘어놓았습니다.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바탕은『선원록』과 같이 무늬없는 ‘주’이며 문양은 사선방향으로 짜여진 ‘능직(綾織)’임을 볼 수 있습니다. 즉, 평직바탕에 능직문양이 결합된 ‘문주(紋紬)’입니다. 100배로 확대한 사진에서 문양선을 만드는 능선이 오른쪽으로 따라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여러 사례를 통해 보듯 ‘비단’으로 보이는 표지마다 세밀한 차이가 있으며, 이는 보존처리 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됩니다. 오염물을 제거할 때는 실이 많이 드러난 방향을 따라 붓으로 쓸어내어서 오염이 쌓이지 않도록 하고, 문양을 드러내는데 사용한 기법이 흐트러지지 않게 클리닝하는 등 처리방법과 과정을 신중히 선택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김선영(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