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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 속 왕실 유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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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경성을 거닐다: 《경성사진첩(京城寫眞帖)》
문자는 오랫동안 인류가 사용한 기록 매체였지만 근대기에 들어 사진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출현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됩니다. 사진은 구체적인 시각화를 통해 문자가 가진 추상성을 보완할 수 있는 매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사진이 공식적으로 수용된 것은 개항 이후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외교 관계를 통해 사진을 접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도입이 된 것은 188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신문, 잡지, 엽서 등 다양한 미디어들의 발달과 더불어 사진은 대중화 되었습니다. 1920~30년대 사진이 어느 정도 일상화 되어가면서 당시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과 새롭게 나타난 풍속을 기록하는 역할을 하는 한편 관광지, 명승고적 등을 홍보하는 매개체로도 기능하게 됩니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이러한 사진의 역할을 보여주는 여러 점의 사진첩이 소장되어 있는데, 그 중 2009년 공개구입을 통해 입수된 《경성사진첩》을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사진첩은 1932년 7월 인쇄 및 발행된 것으로, 발매처는 동경에 본점을 둔 오사카야고서점(大阪屋號書店)이며 인쇄는 와카야마시(和歌山市)에 있는 다이쇼사진공예소(大正寫?工藝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저작자 겸 발행인은 《만주사진첩》, 《대만사진첩》도 발행한 경험이 있던 야마자키 켄이치로(山崎?一郞)입니다.
경복궁 경회루 풍경을 표지에 담은 이 사진첩에는 남대문을 시작으로, 경성의 전경을 담은 파노라마 사진 등 총 42장의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이 사진들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 부분은 일본의 식민통치와 관련된 것으로 조선총독부, 조선신궁, 경성신사 등의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부분은 조선의 궁궐과 관련된 것으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의 사진이 포함되어 있으며 세 번째 부분은 공공기관을 비롯한 주요 건물과 관련된 것으로 경성부청, 경성우편국, 경성운동장, 경성제국대학 등의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진첩은 여러 사진을 한데 모은 특성 상 수록된 사진의 촬영 시기가 모두 다르고, 촬영자도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사진첩에 실린 사진의 경우 다른 사진첩 혹은 사진엽서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발간을 위해 새로 찍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진은 대체로 광택이 있는 종이에 단색(흑)으로 인쇄되었으며, 사진 보호를 위해 반투명 종이가 덮인 상태로 제본되었습니다. 그러나 단 2장, 〈창덕궁 인정전〉과 〈불란서교회〉만은 광택이 없는 종이에 각각 청색톤과 황색톤으로 인쇄되었습니다.
사진 하단 오른쪽에는 제목을 표기하고 있는데, 대체로 풍경에 등장하는 건물명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다만 〈경복궁 내원〉과 같이 대상 건물이 아닌 구역으로 표기하기도 하고, 〈경성그라운드의 위용〉과 같이 대상에 대한 감상을 섞어 표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제목 옆에는 2줄 정도로 간단히 그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데, 〈경복궁〉처럼 창건과 재건 같은 연혁을 언급하기도 하고 〈경성 황금정〉처럼 위치를 언급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진첩의 구성 및 구조로 볼 때 이 사진첩은 관광상품을 이미지화하는 목적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마자키 켄이치로의 서문에도 “경성을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전답사와 같은 안내를 위해 편찬한 것이다. 미비한 점이 있다면 질책해주시기 바라며 완벽을 기하도록 하겠다”라고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제작 목적이 관광정보 제공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은 일본인의 단체관광처로 인기가 많았는데, 이는 철도의 발달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야마자키 켄이치로가 서문에서 “관부(?釜) 연락선(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연결하는 여객선)으로 밤에 시모노세키를 출발하면 8시간 만에 부산에 도착하고 부산에서 기차로 10시간이면 경성에 도착할 수 있으므로 오사카 사람이 도쿄를 여행하는 것보다 가깝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철도의 발달은 일본인의 경성관광을 가능케 하였고 1933년 경성관광협회의 설립으로 말미암아 보다 활성화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성관광은 식민통치의 현장을 확인하는 기회였으며, 사진첩은 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당시를 기록하고 있어 100년이 지난 지금, 당시 경복궁이나 창경궁 같은 궁궐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사진첩의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 최인진, 『한국사진사』, 눈빛, 2000년
- 이경민, 『경성, 사진에 박히다』, 산책자, 2008년
이러한 경성관광은 식민통치의 현장을 확인하는 기회였으며, 사진첩은 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당시를 기록하고 있어 100년이 지난 지금, 당시 경복궁이나 창경궁 같은 궁궐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사진첩의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 최인진, 『한국사진사』, 눈빛, 2000년
- 이경민, 『경성, 사진에 박히다』, 산책자, 2008년
최나래(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