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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 속 왕실 유물 이야기

100년 전의 4차 혁명, 궁궐입체사진

100년 전의 4차 혁명, 궁궐입체사진

1903년 미국 뉴욕의 어느 집 서재에서 조선 궁궐의 모습을 입체적인 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요. 텔레비전은 1920년대에 등장했으니 그보다 20년이나 앞선 시기입니다. 가보지 않고도 지구 반대편에서 조선 궁궐에 대한 호기심을 채웠다면 우리가 요즘 이야기하는 4차 혁명이 이미 100년 전에 일어난 것입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입체사진이 바로 이들을 궁궐로 데려다 준 마법사입니다. 이 유물은 두툼한 종이 위에 거의 똑같이 보이는 두 장의 사진을 나란히 붙여놓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도1) 사람의 눈으로 구분되진 않지만, 두 사진은 찍은 각도가 아주 미세하게 다릅니다. 두 개의 렌즈를 가진 스테레오 카메라로 촬영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을 입체경이라는 특수안경으로 보면 놀랍게도 궁궐이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왼쪽 사진은 왼쪽 눈에 맞는 각도로, 그리고 오른쪽 사진은 오른 쪽 눈에 맞는 각도로 촬영되었기 때문에 사진을 볼 때에 두 개의 시점이 합쳐져 궁궐 안에 서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합니다.

20세기 초반, 서양인들에게 조선이라는 나라는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1904년 조선사람에 대해 다룬 『Koreans at home(가정에서의 한국인들)』이나 1928년에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기록한 『Eastern Windows(동쪽의 창문)』이라는 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도2, 도3). 아직 아시아를 여행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전통과 풍습, 생활방식, 언어가 다른 우리나라를 책으로만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곳을 통치하는 왕과 왕비 등 왕실가족이 사는 궁궐은 더욱더 미지의 세계였는데, 때마침 등장한 입체사진이 가득 담긴 박스를 여는 순간 조선궁궐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890년대 서구의 많은 가정은 입체경을 거실에 두고 각 국의 풍경을 유람할 만큼 입체사진은 인기 있는 상품이었습니다.

이러한 입체사진은 현재 개인소장자나 박물관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6점의 입체사진에 집중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들 만으로도 100년 전에 외국인들이 보여준 조선왕실에 대한 관심과 입체사진 열풍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습니다.

우선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집니다. 6점 중 2점은 키스톤뷰(Keystone View Company)가, 또 다른 2점은 언더우드 앤 언더우드(Underwood & Underwood)가, 1점은 유니버설포토아트(The Universal Photo Art Co)가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들 세 회사는 당시에 입체사진의 촬영과 생산, 판매를 주도한 경쟁사입니다. 그리고 1903년 경회루 앞 연꽃풍경을 보여주는 1점의 사진은 벤자민 킬번(Benjamin W. Kilburn)이라는 사람이 촬영한 사진입니다(도3). 그는 입체사진 초창기에 작은 회사를 설립하여 각국을 여행하며 직접 촬영한 사진을 판매한 사진작가이자 사업가입니다. 키스톤뷰는 1892년부터 1933년 까지 대륙별로 촬영하여 만든 ‘세계여행(Tour of the World)’이라는 입체사진 셋트를 시장에 내놓게 되는데, 아마도 이 때 아시아 지역을 촬영하면서 조선궁궐과 각지의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입체사진의 구성과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가운데에 놓은 사진 두 장의 왼쪽에는 제작사를, 오른쪽에는 보급처가 있는 도시이름을 적었습니다. 아래쪽에는 사진 찍은 곳을 적었는데, 사진기를 향한 방위를 적어, 어디에 서서 대상을 보는 것인지 상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뒷면에는 사진의 장소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전달합니다.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 앞 풍경을 보여주는 입체사진은 가로 17.8cm, 세로 8.8cm의 손바닥만한 크기입니다(도4). 어두운 마분지 위에 땔감을 가득 채운 지게를 옮기는 두 사람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 뒤쪽으로 흥화문과 담장이 보입니다. 왼쪽에는’Keystone View Company’라는 제작사 이름이, 오른쪽에는 ‘Meadville, New York, Portland, Oregon, London, Sydney’ 라 하여 전 세계에 보급처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아래쪽에는 ‘조선의 땔감 지게꾼이라는 뜻의 ’Charcoal Carriers, Chosen (Korea)’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뒷면에는 조선의 지형과 수도 서울에 대한 소개글이 있고, 한국사람들이 건강하고 활기차며 미국인보다 왜소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To what country does Chosen belong?(한국은 과연 어느 나라에 속하는 것인가?)’라는 제국주의적 문구가 있어서 당시의 외국인들이 가진 관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도5).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기술 혁명이 있었습니다. 그 중 19세기 말 보급된 입체사진은 20세기에 펼쳐질 세계화의 출발점에서 사람들에게 세계 곳곳을 보여주었습니다. 100년전 4차 혁명으로 등장한 입체사진은 굳게 닫혔던 조선 궁궐의 문을 열어준 신기술이었고, 지금의 우리에겐 당시 궁궐의 모습과 서양인의 관점을 이해하게 해주는 유물입니다.   


100년 전의 4차 혁명, 궁궐입체사진


참고문헌

『1904 입체사진으로 본 서울풍경』, 서울 역사박물관, 2018

이수정(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