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 속 왕실 유물 이야기
천진난만 아이들의 모습, 백자도(百子圖)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인 ‘백자도(百子圖)’는 다양한 놀이 장면을 보여줌과 더불어 여러 상징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백자도는 백동자도(百童子圖), 백동도(百童圖)라고도 하는데, ‘백(百)’이 많은 수, 충만함을 의미하듯 그림 속에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해맑게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지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연못에는 발가벗은 채 서로 연꽃을 차지하기 위해 손을 뻗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연꽃을 쥔 아이의 다리를 들어 올려 넘어뜨리려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연꽃을 쥔 아이는 빼앗기지 않기 위해 다른 아이의 머리채를 잡는 등 몸싸움을 하는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통통한 아이들이 연꽃을 빼앗느라 야단법석입니다. 그림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백자(百子)는 많은 자손을 의미하는데 연꽃의 ‘연(蓮)’은 잇다르다는 의미의 ‘연(連)’과 음(音)이 같아 연달아 자식을 낳는 것, 즉 다남(多男), 다산(多産)에 대한 소망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옆의 다른 무리의 아이들은 바지를 무릎 위로 걷어 올리고 그물로 물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물고기가 그림에 보이지는 않지만 머리를 맞대고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 모습에 마치 잉어가 파닥거리는 장면을 상상하게 됩니다. 잉어의 ‘이(鯉)’와 이익의 ‘이(利)’는 동음(同音)으로 물고기 잡기 놀이는 부를 얻는 것, 즉 풍요와 번영을 의미합니다.
전각 앞의 넓은 마당에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행차를 하고 있습니다. 선두에는 깃발을 들고 징과 북을 치는 아이들, 목마(木馬)를 타고 따르는 아이, 바퀴달린 수레를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미는 아이들은 마치 고위 관리를 호위하며 행차하는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아이들의 행렬은 관리 행차 모습을 흉내낸 것으로 장차 아이가 커서 입신출세(立身出世)하길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
행렬하는 아이들 옆에는 원숭이 한 마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무리의 아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줄에 묶인 원숭이는 북 소리에 맞춰 마치 재주를 부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며 구경하는 아이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구경꾼 아이 중 한 아이는 꽈당 넘어지면서 신발이 벗겨지고 엉덩이가 드러난 채 엎어져 있는데, 넘어진 아이를 걱정하며 측은하게 바라보는 또 다른 아이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원숭이의 ‘후(?)’는 제후의 ‘후(侯)’와 동음으로 높은 관직에 봉해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매화꽃을 따기 위해 나무에 오르는 아이들, 버드나무 아래에서 손목 때리기 놀이하는 모습, 아기를 업은 큰 아이에게 나도 안아달라며 팔 벌려 떼를 쓰는 아이 등 귀여운 모습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호화로운 전각, 괴이한 태호석(太湖石), 오색 구름, 홍살문, 흰 사슴 등 성스러운 기운과 길상적인 상징들에 둘러싸인 환상적이고도 이상적인 공간 속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화려한 전각, 다소 이색적인 아이들의 머리 모양과 복식은 중국풍으로 백자도의 연원을 중국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99명의 아들이 있던 주나라 문왕이 한 명의 아이를 주워와 100명의 아들을 두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 유목민이 혼인에 사용했다는 백자장(百子帳, 아이가 노는 모습을 수놓은 침상의 커튼)과도 관련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림 속 놀이는 송나라 영희도(??圖)에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백자도는 병풍의 형태로 제작되어 왕비가 동뢰연(同牢宴)을 치르기 전 왕실 법도를 배우며 머무는 별궁에 놓였고, 궁중연향에서 왕세자와 왕세자빈이 머무는 곳에도 설치되었습니다. 창덕궁에서 전래된 이 백자도 병풍에는 왕자의 탄생을 염원하는 왕실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 참고
박정혜, 『조선 궁궐의 그림』, 돌베개, 2012년
김선정, 「조선후기 백자도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 논문, 2001년
안보라(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