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기록문화유산
어제근팔계충자문
御製近八戒沖子文
어제근팔계충자문(御製近八戒沖子文)은 영조가 1769년(영조 45)에 세손인 정조에게 학문의 중요성을 당부하고 더욱 연마하도록 훈계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운각(芸閣)에서 간행한 불분권 1책의 목판본이다.
권수에는 어필로 ‘훈계(訓戒)’라고 대자(大字)로 제자(題字)하였으며, ‘한 편의 훈유를 완성하여 만대의 경계로 삼는다[成一篇之訓, 垂萬代而戒].’고 하였다. 이어 본문이 시작되는데, 그는 자성편(自省篇)을 지었을 때는 50이 넘은 나이에 불과하였는데 지금 80이 가까워 오는 나이에 자신의 학문이 부족했음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주자께서 소학의 ‘쇄소응대진퇴(掃灑應對進退)’, ‘애친경장융사친우(愛親敬長隆師親友)’의 방도는 곧 대학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근본을 이루는 것에 있다고 한 만큼 자신의 학문 방향 또한 이를 향하고 있음을 말하였다.
또한 대학(大學) 명명덕(明明德) 장의 요지와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등 학문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며, 끊임없이 학문을 연마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설파하였다. 이와 아울러 정치 경험을 서술하고, 물욕(物慾)과 이욕(利慾) 등을 멀리할 것을 당부한 훈계 및 권면의 말 등을 두서 없이 기록하고 있다. 부록에는 본문에 담지 못한 내용을 보충하고 있는데, 한·당(漢唐)의 역대 왕들을 예로 들며 이들을 귀감과 경계의 표본으로 삼고자 하였다.
글의 말미에는 이 글을 기묘년(1767) 11월 5일에 지은 후 운각에 전현직 대신에게 베껴 쓰게 하고는 운각에 활인하도록 명하여 세손에게 부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의 상황은 승정원일기 1767년 11월 27일 기사에도 전해지는데, “전교하여 말하기를, 「근팔계충자문(近八戒沖子文)」을 전현직 대신들에게 두루 보인 후 수찬(修撰) 이명빈(李命彬)에게 교정하게 하라. 한 건을 내입(內入)하고 한 건은 세손궁에 들이며 승정원과 홍문관, 예문관, 다섯 곳 사고에 각기 한 건씩 보관하라.”고 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소장기호 : 일산古1570-22) 등에도 소장되어 있다. 당대 군주인 영조는 세손을 향한 애정어린 마음을 가지고 훈유하는 글을 여러 차례 지어 보였는데, 이를 통해 영조 재위 후반의 학문관과 치도(治道)의 지향점 등을 살펴 볼 수 있다. 본관 소장 자료인 어제훈세손서(御製訓世孫序)(궁중428) 또한 같은 목적으로 지어진 비슷한 성격의 훈유문이며, 같은 해 5월에 쓰여진 어제근팔유곤록(御製近八裕昆錄)(고궁 1460)과도 좋은 참고가 된다.
※목차
- 御筆
- 御製近八戒沖子文
- 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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