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문화유산
회화
이성윤 초상
李誠胤 肖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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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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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1613년경(조선시대) -
재질
지류(회화) -
크기(cm)
178.4cm x 106.35cm(그림), 256.5cm x 122.7cm(전체)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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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윤(李誠胤, 1570~1620)이 1613년(광해군 5)에 위성공신(衛聖功臣) 2등(等)에 녹훈(錄勳)될 때 하사받은 위성공신상(衛聖功臣像)으로 추정되는 초상화이다.
17세기 초반의 가장 전형적인 공신도상이다. 화면의 인물은 단령(團領)을 입고 공수(拱手)한 뒤 교의(交椅)에 앉아 있으며 반우향(半右向)을 하고 있다. 바닥에는 화려한 채전(彩氈)을 깔고 두 발은 돗자리를 깐 목제(木製) 의답(椅踏) 위에 약간 팔자형(八字形)으로 벌린 모습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정교하고 치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수작으로 위성공신(衛聖功臣)이면서 종실(宗室) 어른으로서 높은 인품(人品)으로 많은 존경을 받았던 인물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하여 전체적으로 금은(金銀)을 화려하게 사용하고, 천연 석채를 사용한 수준 높은 초상화이다.
광해군(光海君, 재위1608~1623)은 1613년 임진왜란을 극복하고 자신의 즉위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위성공신과 익사공신(翼社功臣), 정운공신(定運功臣), 형난공신(亨難功臣) 등을 내렸다. 그러나 1623년의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광해군이 폐출되자 모두 삭훈(削勳)되고 공신녹권(功臣錄券)과 공신도상도 국가에서 수거하여 소각했다. 이로 인해 광해군 때의 공신상은 그 실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초상화와 함께 이성윤 위성공신교서가 전해져 일부 그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탁유물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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