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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 지정문화유산

지정문화유산

남은들상여
남은들상여
남은들상여

기탁

남은들상여

남은들喪輿

  • 유물번호

    기탁유물
  • 연대

    1840년 ~ 1852년
  • 재질

    복합
  • 크기(cm)

    -

첨부파일 :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남은들상여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李球, ?~1822)의 시신을 장지까지 운반했던 상여이다. 행상, 영여, 온량거라고도 한다.
긴 멜대를 중심으로 한 기본틀 위에 관을 싣는 몸체를 조성하고 맨 위에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넓은 천을 펼쳤다. 몸체에는 봉황, 용무늬 등이 새겨지고 색색의 띠와 술을 늘어뜨려 화려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주고 있는데 망자의 명복을 빌고, 슬픔을 덜어주려는 의미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왕실에서 사용하던 상여에 비해 소박한 모습이지만 왕실 상여의 제작을 담당하던 ‘귀후서(歸厚署)’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남연군은 1822년(순조 22)에 죽었는데 당시의 가야사 터(현재, 예산군 상가리에 있는 보덕사터)가 왕손을 낳게 하는 명당이라는 풍수설에 따라 흥선대원군이 1840년(헌종 6)에 가야사를 불태우고 아버지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했다고 한다. 이장을 하고 난 그 다음 해에 둘째 아들 이재황(李載晃, 후에 고종으로 즉위)을 낳았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상여의 제작은 1840년과 고종의 탄생년인 1852년 사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상여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상여라는 점, 다른 상여에 비하여 제작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는 점, 각 부의 조각수법 등 당시의 상여조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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