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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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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근대기 제작 진전 봉안 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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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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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1826년(순조 26)~1936 -
재질
견복 채색 -
크기(cm)
첨부파일 :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근대기 제작 진전 봉안 어진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국왕의 초상화인 어진은 조선왕조의 정통성과 권위를 표상하는 것으로, 등록문화재로 등록된「근대기 진선 봉안 어진」은 태조어진(홍룡포본)·원종어진·순조어진·순종어진 4점이다. 이들 어진은 6·25 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옮겨졌으며 전쟁 직후 보관창고 화재로 부분적으로 훼손되었으나 용안의 일부와 곤룡포·신발·용상·채전(彩氈, 무늬가 있는 깔개) 등의 색채와 문양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태조어진(홍룡포본)은 함경남도 영흥의 준원전(濬源殿)에 봉안되어 있던 태조어진을 1900년에 조석진, 채용신 등이 이모(移模)한 것으로, 조선 초기 중년기의 태조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종어진은 인조의 아버지(정원군, 원종으로 추존)의 어진으로서 왕자군(王子君)만 사용할 수 있었던 백택(白澤) 흉배가 부착된 흑단령(黑團領)을 입은 모습으로 17세기 초반의 공신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특이하다. 원종어진은 창덕궁 신선원전에 봉안되어 있던 어진을 1936년에 김은호가 이모한 것이다. 순조어진은 절반 이상이 불에 타 얼굴을 확인할 수 없으나, 표제가 남아있어 순조어진임을 알 수 있다. 순조어진은 검은 원유관과 붉은 강사포를 착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순종어진은 순종황제가 1926년 승하한 후 1928년에 그려진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제작되었지만 조선왕조의 어진 제작 전통에 따라 진전 봉안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조선왕조의 마지막 어진 제작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다만, 어진 중 원종·순종어진 제작에 참여한 김은호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 포함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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