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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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사진의 의의
국립박물관이면 당연히 사진전문 직원과 사진실이 있어야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해서 1960~1970년대 까지 규모도 작고, 직원도 몇 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박물관 전시품 도록, 명품도록, 특별전시도록도 내야하기 때문에 문화유산전문 사진작가가 꼭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꼭 중요한 소장품 사진이 필요할 때면 일본에서 저명한 사진작가를 초청하여 촬영을 하곤 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다에다」라는 작가였습니다. 당시에는 전문 박물관 건물도 없어서 덕수궁 내의 석조전이 박물관이었습니다. 그 후 문화재관리국 국장 하갑청(퇴역 육군중장)이 예전에 아이스쇼가 있었던 경복궁 동편 공터에, 건물 내 중앙에 아주 커다란 연못이 있는 종합박물관이라는 건물을 지어 문화재관리국에서 종합박물관을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화재관리국에서 박물관을 운영할 수가 없으니까 정부에서 이곳을 국립박물관이 사용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건물 내의 연못을 메워서 중앙홀로 개조하는 등 여러 곳을 고쳐서 국립박물관이 덕수궁에서 이곳(현재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1971년 호암 소장 문화유산 전시를 국립박물관에서 하게 되었는데, 매우 의미 깊은 큰 전시였기에 국립박물관에서도 성심껏 신중히 전시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시준비를 위한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전시도록의 발간이었습니다. 도록 발간을 위해서 국립박물관과 인연이 있는 평화당인쇄의 사진담당자이자, 사람이 겸손하고 조심스럽고, 연구심이 강했던 한석홍 사진작가를 선임하고, 도록 사진을 촬영하기로 하였습니다.
사진촬영은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이므로 1970년 겨울부터 호암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는 중앙일보에 가서 사진촬영 작업을 하였습니다. 이때 삼성의 경호실 직원이 참으로 성심껏 우리를 도와주었습니다. 중앙일보 이층 사장실 옆의 큰 방을 내어주어 본인이 우리 직원과 한석홍 작가를 데리고 두 달 이상 작업을 하며 사진촬영 작업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한석홍 작가는 신중하고 연구심이 강하여 유물을 촬영할 때, 유물을 사진 작업대에 올려놓으면 꼭 나에게 중심 촬영시점을 어느 곳에 두어야하는가, 다시 말하면 유물의 면 중 어떤 면을, 어느 곳을 중심으로 찍어야 하고, 카메라 렌즈는 그 높이를 어떻게 하여야 하는 것을 일일이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사진기를 전부 조정하여 놓고 반드시 나에게 보아 달라고 하고, 유물의 어디쯤에 시점을 맞추어야 하는가를 묻고, 내가 좋다고 하면 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했던 것은 문화유산 촬영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유물 전문가의 의견을 절대로 존중하면서 신중하게 배우는 자세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국립박물관 연구관과 많은 작업을 여러 해 이어가니까 몇 년 후에는 한석홍작가 자신이 모든 것을 알아서 촬영하고, 혹 전혀 새로운 유물을 촬영할 때면 언제든지 문화유산 전문가와 서슴없이 상의하였습니다. 한석홍 작가의 사진이 높은 수준에 이르자 일본에서 한국미술품 사진이 들어가는 책을 발간할 때는 한석홍 작가에게 의뢰하여 촬영한 사진을 이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석홍 작가는 겸손함을 바탕으로 문화유산의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 특히 어떻게 하면 문화유산의 특징이 사진에 잘 포착할 수 있는가를 열심히 전문가와 의논하고 터득하여 우리나라 문화유산 사진작가로 굳건히 자리매김 하였고, 제 일인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문화유산 사진작가로 제 일인자가 된 것은 겸손함과, 배우는 자세와, 사진 촬영할 때의 연구노력 등이 쌓여 이루어낸 노력과 연구의 결과였습니다.
한석홍 작가의 자제 한정엽군이 대를 이어 문화유산전문 사진작가로 크게 활약하고 있습니다. 한석홍 작가와 한정엽군은 보통 사진작가가 아닙니다. 수십 년 촬영한 사진자료는 두 분이 잘 정리하여 탈색, 변색되지 않도록 과학적으로 잘 보존하여 그 가치가 더욱 높습니다.
우리나라는 기록문화를 잘 보존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조선왕조실록』 등의 위대한 기록문화를 잘 보존하였습니다. 한석홍 부자는 국가적으로 중요하고 희귀한 문화유산은 물론 보편적 가치가 있는 사진도 무수히 보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왕실유물 사진과 석굴암 사진 등이 있습니다. 왕실유물 사진은 이번에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국가유산청에서 관리하고 있는 고궁에 산재되어 있는 대표적인 왕실유물들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발간한 궁중유물도록(1986년)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석굴암 사진(2020년 국립문화재연구소 기증)도 중요한 자료입니다. 석굴암 내부 전체를 본존불은 물론 구석구석을 심층적으로 몇 번이고, 촬영한 작가도 한석홍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귀중한 사진기록들은 다른 어떤 기록문화유산에 비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는 기록문화유산자료입니다. 한석홍 작가의 사진들은 국가에서 할 일을 개인이 보존한 귀중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귀중한 사진기록유산을 국가에 헌납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요, 마땅히 국가에서 이를 받아드려 보존하고 그들의 노고를 크게 치하하여야 할 것입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